인도.네팔 여행기(14)
오늘은 1월 31일 수요일. 이번 여행의 절정인 듯하다.
8시 30분 호텔을 출발하여 기대하던 타지 마할을 향해 간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타지 마할이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1킬로미터 떨어진 타지마할까지 걸어가도 되는 거리였지만 전기 자동차를 타고 간다. 이곳에서는 기름을 사용하는 차는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입구에 당도하니 덧버선과 생수를 하나씩 준다. 그리고 '타지마할' 입장할 때 대리석에 해가 될 물품, 사탕, 물, 화장품 등은 소지가 안 된다고 한다. 물론 그래야지, 세계 문화유산 보호는 절대적인 사명인데 .... 우리는 미리 버스에 두고 내렸기에 별 문제는 없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붉게 물든 성과 망루를 바라보니 웅장함을 느끼게 된다. 또한, 사랑의 위대함을 .....
<입구로 들어서자 양편의 붉은 건축물로 위압감을 느낀다.>
타지마할은 사랑하는 왕비를 향한 한 제왕의 집념이 얼마나 처절하였던가를 웅변으로 보여 주는 듯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무굴제국 황제 샤자한은 재상의 딸 뭄타즈 마할을 열아홉 살 때 왕비로 맞이했는데 그녀는 샤자한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함께였다. 물론 전쟁터마저도 .... 샤 자한은 그녀가 열네 번째 아이를 낳다가 사망하자 머리가 하얗게 셀 정도로 충격을 받았고, 왕비에 대한 그리움을 그녀의 무덤을 세계 최고의 건축물로 만들어 .죽은 왕비에 대한 사랑을 영원히 기리기 위하여 전대미문의 무덤을 만들었다. 이것이 타지마할이다.
'샤자한'의 첫째 둘째 부인은 자녀가 없었고 셋째인 '뭄타즈'에 의해 13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그 중 7명은 죽고, 살아남은 6명 중 4명은 아들 2명은 딸이라고 한다,
결국 공주 2명은 왕족이 없어(결혼 상대) 미혼으로 생을 마감하였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연못에 비친 그림자가 선명하니 더욱 돋보인다.>
<양 옆에 세워진 기둥이 무덤 밖으로 각도가 기울어져 있다.>
이 어마어마한 무덤은 1631년부터 22년간에 걸쳐 건설되었다. 이 무덤을 만들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최고의 건축가 및 인부 20여 만 명을 동원하였다고 하니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샤 자한은 이 건물이 완공된 후 똑같은 건물이 생기길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작업자 전원의 양손을 모두 잘라버렸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자세히 들여다 본 타지마할은 어이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건물 재료의 약 90% 이상이 대리석이며 모든 무늬들은 대리석을 깎아 내고, 여러 나라에서 들여온 각종 보석과 다양한 색의 대리석들을 채워 넣는 상감기법을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문 위의 꽃무늬도 마찬가지다. 좌측의 통풍구도 모두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모두 상감 기법으로 각 나라의 보석을 박은 것이다.>
한 마디로 놀랍고 또 놀랍다.
22년간 건축하였다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타지마할, 앞에 꾸며놓은 긴 푸른 빛 연못에 비친 웅장한 대리석 건물의 그림자. 회교 사원 특유의 둥근 모스크 위에 앉아 있는 이름 모를 새들, 위대한 사랑의 힘을 알 듯하면서도 모르겠다.
<타지마할의 옆에 세워진 힌두 사원>
타지마할 뒤편에는 야무나 강이 세월의 무상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유히 흐르고 있다.
<타지마할 뒤에 있는 야무나 강>
'샤자한'의 세번째 왕비 뭄타즈 왕비의 관이 온갖 꽃 대리석 문양을 한 채 가운데 있고, 그 옆에 훗날 죽은 샤자한 왕의 무덤이 아들에 의해 불균형을 이루며 자리하고 있다.
<가운데가 뭄타즈의 무덤, 그 옆에 샤자한의 무덤이 있다.>
백색 대리석 창살 문양, 희미한 조명이 죽은 자의 영혼을 비춰 주고 있는데~~ 손으로 그냥 쓰다듬고 또 쓰다듬어 보았다. 타지마할 옆 붉은 색 회교사원이 서로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런데 타지마할에 박아 놓았다던 보석들은 식민지 시절, 영국인들이 모두 빼갔다고~~ 그런데도 인도인들은 영국인들을 고맙게 생각한다니 아이러니컬하다. 영국의 지배에 있지 않았다면 철도, 전기 등 문화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을 거라나 .....
타지마할 옆에 다른 어떤 시설물도 세울 수 없도록 일부러 강가에 세웠으며, 기둥이 약간 삐뚤어지게 건축한 것도 지진이 났을 때를 대비하여 무덤의 반대편으로 쓰러지도록 만들었다니 그 정성 지극하다.
<기둥이 무덤 바깥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비록 당시에는 나라 재정을 파탄 내는 원흉이었지만 후세에게 세계 최고의 걸작을 남겨 유산으로 물려주었으니 그 누가 알랴 .....
또한, 입구 왼쪽 화장실에 이어진 붉은 회랑에 전시된 병풍으로 만든 인도의 성들, 참으로 대단하다.
이어서 타지마할의 슬픈 이야기와 관계가 깊은 야무나 강가 저편에 있는 아그라성을 향한다.
이 성은 1566년 무굴의 3대 황제 악바르가 지은 성으로 샤자한이 황제가 된 뒤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궁전으로 변모시켰다.
<아그라 성 입구>
사자한은 훗날 자신의 무덤을 타지마할의 야무나 강 반대편에 검은 대리석으로 지어 양쪽 무덤을 구름다리로 연결할 계획이었으나 그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아들의 구테타로 왕위에서 물러나 아그라성에 8년 동안 갇혀 사랑하는 아내 '뭄타즈'를 잃은 무굴제국의 황제 '샤자한'이 아내를 위하여 세운 아름다운 무덤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생을 마치고 타지마할에 왕비와 함께 잠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본래의 왕비 무덤 옆에 안치한 관계로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본래의 무덤은 지하에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제항기르펠리스 전경>
<이 정원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장이 선다고 한다. 왕비가 바깥 출입을 할 수없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라도 외로움을 달래 주었다고 한다.>
아그라포트(Agra Fort) 내에 있는 제항기르 펠리스(Jehangir's Palace)는 힌두 양식과 아프가니스탄 양식의 건축 기법을 혼합해 건축한 궁전이다.
<요즈음의 냉장고 역할을 하는 시설이다.>
<이곳에 영국인 총독의 무덤이 덩그마니 놓인 것은 무슨 조화인지>
이 건물은 악바르 황제가 어렵게 얻은 첫째 아들인 제항기르를 위해 지었다고 한다. 그것 또한, 왕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었으리라 ....
이러한 무수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아그라를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된 듯하다. 다음 일정을 위해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버스에 오른다.
<멀리 바라보이는 타지마할을 보며 8년을 보냈다니 .....>
버스에 오르니 여자 일행들이 상점에 들르자고 하여 대리석으로 된 찻잔을 사려고 상점에 들렀다. 이 상점의 물품들은 거의가 상감 기법을 이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상점에 비치된 대리석으로 만든 타지마할>
클락스 호텔에 다시 돌아가 식사를 하고 또 기나긴 여행을 떠난다.
자이프로 가는 도중에 만나는 대리석 공장들이 즐비하다. 타지마할을 건축할 들어간 대리석은 모두 인도에서 공급한 것이라고 하니 인도의 대리석 문화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대리석을 생산하는 공장들>
6시간을 달려서 자이푸르로 ~~~
저녁 늦게 도착한다. 이 호텔도 클락스라고 한다. 이 호텔의 주인은 인도에 8개의 호텔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도착을 하자 인솔자가 인도에서의 마지막 밤을 위해 양주를 준비했다고 한다. 한교여행사에서 준비한 선물이란다.
우리는 모두 무사히 여행을 인솔해 준 인솔자와 가이드에게 감사를 드리며 축배를 들었다.
식사를 끝내고 정원을 보니 연화가 한창이다. 후에 들으니 이곳에 자이푸르의 핑크시티팰리스의 왕비가 들렀다고 한다. 일명 비비안리라고 할 정도의 미인이란다.
<남의 연회장에서 한 잔씩 축냈다.>
<연회장 입구에서 한 컷>
우리는 식사 후 운동을 하며 1시간여의 운동으로 피로를 풀고 숙소로 들었다.
내일의 마지막 일정을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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