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팔 여행기(3)
가이드를 필두로 차례로 입장한다. 자욱했던 안개도 어느덧 가신 듯하다. 각자 지닌 사진기로 기념 촬영들을 한다. 별로 큰 사원은 아니지만 깔끔하게 다듬어진 모습이다. 들어가면 정원도 잘 다듬어져 있다. 입장하기 전에 모두 덧신으로 갈아 신고 사원으로 오른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려 하니 안내자가 설명을 들은 후 입장하란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주의 사항만 일러 주었단다.
<안내원의 연꽃 사원에 대한 설명을 경청하고 있는 동료들>
<27개의 꽃잎을 형상화하여 건축하였다고 하여 신비로움이 더했다.>
한국에도 약 2만여 명의 신도를 가지고 있는 바하이교 사원이다. 바하이교는 이슬람에서 분파된 신흥 종교로 전인류의 형제화, 종교의 통일, 모든 국가의 통합을 주장하는 종교이다. 사진에서 보듯 27개의 꽃잎을 형상화하여 신비감을 더해 주는 사원이다.
이 속에 명상의 방을 만들어 종교에 관계없이 누구나 명상을 즐길 수 있단다. 잠시 내부에 들러 묵념을 한 후 빠져 나온다.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눈에 담고 나왔다.
여기서 단체로 사진을 찍고 서로의 느낌을 이야기하며 각자의 신들을 찾아 신고 나온다. 한 친구가 화장실을 들르면서 담배를 피워도 되느냐고 바디랭귀지로 남자 안내원에게 물으니 그렇게 하라고 한다. 그것을 본 여자 안내원이 무섭게 남자 안내원을 나무란다. 남자 안내원의 쩔쩔 매는 그 모습을 보면서 쓸쓸히 웃어본다. 그들을 뒤로 하고 연꽃 사원을 나오니 인도인들이 떼 지어 몰려온다. 돈을 달라는 어린아이, 물건을 팔아달라는 사람들 ... 상대하면 또 늦어진다고 가이드가 서둘러 버스에 오르라고 한다. 우리들도 가이드의 말에 따라 버스에 오른다. 버스가 출발하니 물건은 팔지 못했지만 그들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든다. 답례로 손을 흔들어 주지만 씁쓸하기만하다.
10시 30분 연꽃 사원을 출발하여 사하라 공항으로 향한다. 이제 네팔의 카트만두로 가는 여정이다. 가는 곳곳이 매연이 보통 심한 것이 아니다. 가는 길의 주변은 슬머가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정할 것 같다. 따라서 지저분한 주변 상황과 어울린다고나 할까? 특히 시장통을 지날 때는 더욱 심하다. 트럭들에서 내뿜어지는 매연이 더욱 심하다. 우리 버스도 시동을 걸 때마다 시커먼 매연을 뿜어내는데 트럭은 오죽하랴.
가는 도중에 입이 심심해서 오렌지를 까서 먹는다. 껍질을 쓰레기봉투에 담고 있으려니까 가이드가 그런 음식물 찌꺼기는 창밖으로 버리란다. 지나가는 소나 돼지 등 동물들이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차원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농약 때문에 버리면 안 된다고 하니 인도에서는 농약 살 돈이 없어서 수확량이 적더라도 농약 사용은 하지 않기 때문에 상관이 없단다. 그러니까 농산물 자체가 모두 청정 식품인 것이다. 부러운 말이었다. 그럭저럭 주변을 살피다보니 사하라 공항에 도착했다. 13시 10분발 비행기이니 2시간 전에 도착한 것이다. 공항은 매우 비좁았다. 1970년대 지방 공항 같은 느낌이 든다. 곧바로 공항 검색대가 있다. 공항이라고 해서 대합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합실이 곧 검색대이다. 국내선은 대부분 그렇다고 한다. 화물 검색대를 통과하니 곧바로 화물 송출하는 곳이 붙어 있다. 화물을 송출하고 바로 연결된 출국 심사대가 있다. 적외선 검색대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일일이 손으로 지니고 있는 물품들을 뒤진다. 여기서 이들의 행동은 제멋대로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조건 이유를 대고 통과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다음에 인도를 여행하실 분은 욕심이 생길 수 있는 물품은 화물로 보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여기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필수품인 라이터와 성냥들을 두 사람이 압수당한다. 요즈음 공항 테러가 심해 검색에 매우 인색하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화장품, 물, 술 등도 소지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도 술을 한 박스나 가지고 갔는데 손을 쓰고 모두 통과시켰다. 출국 수속을 마치니 면세점으로 들어가니 11시 40분이다. 면세점이라고 해야 점포가 몇 개 있을 뿐이다. 살 것도 없으니 앉아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모두 카트만두에서의 일정을 꺼내 보며 나름대로의 계획들을 세운다. 그런데 방송을 통해 게이트가 바뀌었다고 한다. 3번 게이트가 6번 게이트로 바뀌었다고 한다. 어떻게 바뀌든 제 시간에만 출발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기다렸다. 그러나 10분 후 언제 출발할지 모르니 방송에 귀를 기울여 달란다. 이런 황당. ‘인도이니까’를 되새기며 또 기약 없이 기다리기로 했다.
<공항 탑승 대기실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
각자 잠을 청하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 책을 보는 사람 등 나름대로 편한 대로 기다린다. 14시가 되었는데도 소식이 없다. 그런데 출발 5분 전에 곧 출발하니 모두 모이란다. 14시 10분에 출발한단다. 부리나케 준비하고 비행기에 오르니 인원 확인 후 출발한다. 그 시간이 딱 10분 걸렸다. 14시 15분 드디어 사하라 공항을 출발한다. 역시 인도다. 그저 오늘 출발한 것만도 고맙다. 우리팀 바로 직전의 팀은 이틀을 비행기가 뜨지 않아서 고생했다는 말을 들으니 우리는 대접받았다는 느낌이 든다.
비행기 창밖을 보니 구름 위라 볼 것도 없다. 낮이지만 잠을 청하기로 했다. 잠을 한숨 자고 나니 거의 도착할 시간이 된다. 16시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한다.
<네팔 공항에 내린 우리 동료들>
<도착하여 입국장으로 들어가는 동료들>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고 있는 동료들>
짐을 챙기는 시간이 꽤 걸린다. 짐을 찾아 나오니 17시가 된다.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 살아 있는 여신이 있다는 꾸마리 사원으로 향한다.
버스에 오르자 가이드가 네팔에 대한 안내를 한다.
네팔(Nepal)은 남아시아 히말라야산맥 중앙부에 있는 나라. 정식 명칭은 네팔왕국이다. 면적 14만 800㎢. 수도인 카트만두는 해발 1,350미터에 위치해 있으며, 가장 큰 도시로 인구는 약 3,350만 명이라고 한다.
※ 참고 “ 네팔은 인도와 중국(티베트자치구) 사이에 있다. 역사적으로 위 두 나라와 문화적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정치적으로도 국제적 완충지대이다. 변화가 심한 자연환경과 복잡한 민족·종교를 가진다.
30분 정도 가니 도착했음을 알려 준다. 10분 정도 걸어야 한단다. 큰 버스는 통행할 수 없는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란다. 버스에서 내려 육교를 건너 시장통으로 발길을 옮긴다.
<아수라장인 시장통. 1970년대 초의 명동거리 같았다.>
꼭 남대문 시장통을 지나는 느낌이다. 서울의 명동이라고 일컫는 곳이라고 한다. 이런 곳에 팀을 놓치면 큰일이라는 생각에서인지 모두 부지런히 움직인다. 가는 길이 좁은 데다가 차, 오토바이, 사람, 각종 동물들이 뒤어켜 정신이 없는데 경적 소리까지 더해져 더욱 혼을 뺏는다. 10여 분쯤 가니 시장통 한가운데에 광장이 펼쳐진다. 달벌 광장이란다. 꾸마리 사원을 비롯해서 삥 둘러선 문화재들 모두 유네스코에 등록된 세계 문화유산이라고 한다.
<스와얌부나트를 외곽에서만 관람>
<설명을 듣고 있는 동료들>
<달벌 광장>
제일 먼저 본 것이 스와얌부나트를 외부에서만 구경하고 시간이 없어서 박물관은 지나친다. 꾸마리 사원을 들를 즈음에는 완전한 어둠이 깔린다.
<가운데 불빛이 새어 나오는 곳이 꾸마리 여신이 머무는 곳이란다.>
가이드는 설명하고 나는 사진 찍느라 정신없다. 그런데 갑자기 사진 촬영을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사진 찍기를 중단하고 주위를 살핀다. 가이드와 그곳 안내원이 무슨 말을 주고받더니 꾸마리 여신이 얼굴을 볼 수 있게 해 준단다. 잠시 후 제일 높은 곳의 가운데 방 창문을 통해 빨간 드레스를 걸친 조그만 어린 여자 아이가 얼굴을 내밀고는 손을 흔든다. 물론 사진 촬영은 금물이다. 꾸마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간 터여서 그런지 그 아이가 측은하게 느껴진다. 자의적이라기보다는 타의적으로 신이 되어 희생되는 삶에 동정이 어린다. 꾸마리는 세계 유일의 ‘살아 있는 꼬마 여신’이란 뜻이다. 네팔에서 태어난 5살 된 여자 아이 중에서 가장 미모가 있고, 똑똑하다고 인정되는 아이를 선정하여 신으로 받든다고 한다. 이후 신으로 행세하는 동안 사원 밖으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고 한다. 한 마디로 신이라는 미명하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다. 그렇다고 영원히 신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면서 .... 10살이 되면 신의 지위에서 다시 평민으로 환생한다. 그러나 꾸마리가 되었던 아이는 주변에서 재수없는 아이로 낙인이 찍혀 말년에는 아주 비참한 생활로 마감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결혼도 할 수 없다. 법적으로서가 아니라 받아 줄 남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엄연한 아동 학대에 속한다는 생각이 든다. 받들어 모실 때는 언제이고 버리는 것은 또 무엇인지 헷갈린다. 생각하지 말자, 골이 아프다. 사원을 나와 주변에 널린 하누만두카, 파슈파티나트, 보드나트 등 문화재 를 감상하려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가로등이 없으니 ... 사진은 카메라 플래쉬에 의존해서 찍으니 그런대로 볼 수 있었다. 손전등을 가지고 갔으면서도 써 보지도 못했다. 버스에 두고 내렸다나 ... 울 마님 최고일세.
<왼쪽의 회색 건물이 박물관이다.>
그곳 구경을 마치고 다시 들어온 길을 되돌아오는 길은 더욱 복잡하게 느껴진다. 어둑할 때 걸었던 길을 캄캄할 때 나오려니 헷갈린다.
<컴컴해서 제대로 설명을 들을 수 없었던 유물들이다.>
동료들을 챙기면서 낙오되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앞뒤로 호위하며 움직이다보니 육교가 보인다. 이제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버스가 보이지 않는다. 조금 걸어가니 버스가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에 오르니까 8시가 된다. 이제 식당으로 향한다. 이제 식사를 마치면 하루 일정은 끝난다. 반가르 민속쇼를 관람하면서 식사를 한단다. 식당에 도착하니 우리 팀은 일찍 도착한 편이다.
<식당에 자리 잡은 동료들. >
<식당에서 민속쇼로 공작춤이 시연되고 있다.>
예약된 자리를 잡고 앉으니 전통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아직 본격적인 쇼는 시작되지 않고 있었다. 잠시 후 일본 팀과 중국 팀이 자리를 채우자 그 때부터 본격적인 쇼가 시작된다. 우리는 그 중간에 가져간 소주로 반주를 하며 기다렸다. 그런데 그들이 주는 술이라고 해서 마셔 보니 43도짜리 빼갈이다. 술을 따르는 솜씨가 기막히다. 얇은 접시에 따르는 술이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잔에 채워진다. 아래 사진이 술을 따르는 모습이다.
펼쳐지는 민속쇼는 일반적인 애정을 주제로 한 춤과 공작춤이었다. 술과 식사로 하루의 피로를 풀고 호텔로 향했다.
하이얏트 호텔이었다. 도착하니 10시가 훌쩍 넘기고 있었다. 오늘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해도 좋을 것 같았다. 명색이 하이얏트 호텔인데 ... 짐을 인계받고 1불을 지불한다. 잠시 모여 내일 일정을 알린다. 5시 30분 콜, 6시 30분 식사, 7시 30분 출발해야 한단다. 포카라로 뜨는 비행기가 8시 30분이란다. 어짜피 연발인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그냥 따르기로 했다. 숙소로 들어와 짐을 챙긴 후 욕탕에 드니 이제는 붙박이 샤워기다. 그런데다가 샤워기의 물줄기가 폭포수다. 분사가 되지 않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따뜻한 물이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으로 대만족이다. 샤워를 끝내고 나니 몸이 개운하다. 역시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내일의 여정이 좋기를 기대하며 잠을 청한다. 내일은 히말라야를 먼 발치에서나마 구경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
<계속>
'해외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도.네팔 여행기(5) (0) | 2007.06.04 |
---|---|
인도.네팔 여행기(4) (0) | 2007.05.30 |
인도.네팔 여행기(2) (0) | 2007.05.25 |
인도.네팔 여행기(1) (0) | 2007.05.25 |
[스크랩] 인도의 거리-1 (0) | 2007.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