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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날의 행복---여보! 사랑스러운 영원한 내 친구야,

하얀제비 2006. 2. 23. 14:45

  

 

여보! 사랑스러운 영원한 내 친구야,


토요일 오후 시린 바람을 등지고 한겨울의 모퉁이에 자리잡고 우두커니 서 있답니다.

 

왠지 알아요?

 

오늘이 우리의 결혼 기념일.

 

가벼운 주머니 탓에 엄두를 못내는 마음.....


여보, 그거 알아요?


뭐든지 당신에게 해 주어야만 할 것 같은 나의 마음을,


 

그런데, 그런데 주머니가 너무 가벼워 멍청해진 이 순간을......

 

순간 떠오르는 아이템....

 

추위를 유달리 잘 타는 당신을 감싸 줄 따뜻한 잠바


가자, 동대문으로......

 

비록 당신이 기다릴 줄 알면서도 선물을 받고 기뻐할 당신의 모습을 그리며,

 

달려간 시장 한가운데 서서 어느 것이 예쁠까 생각하며 두리번거리다가

 

한 상점의 예쁜 옷이 보입니다.

 

단걸음에 달려가

 

"이거 얼마예요?"

 

"그거 만 오천원입니다."

 

주머니에는 이천오백원밖에 없었어요.

 

고개를 떨구고 나오는 내 등 뒤에서 

 

"그럼 만삼천 원까지 드릴께요."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못들은 체하고 나왔어요. 


이제 디자인은 보지 않을래요. 너무 주머니가 가벼워서요.

 

이해해 주세요.

 

그렇게 시장 안을 헤맨지 세 시간이 되었네요.

 

그런데, 그런데 모양도 예쁘고 따뜻할 것 같은 옷이 눈에 들어오네요.

 

상점에 들어서자마자,

 

"이거 얼마예요?"

 

"삼천이백원입니다."

 

투박스런 주인 아저씨의 어감에 주눅이 든다.

 

"조금 깎아 주세요."

 

"얼마 있어요?"

 

"이천오백 원 밖에 없어요."

 

힘없는 내 말에 주인 아저씨는

 

"이 옷 맘에 드세요? 정 맘에 드신다면 천원만 더 쓰세요."

 

주머니를 뒤지니 동전 몇 개가 더 있다. 이 동전이 없으면 집에 걸어가야 하는데...

 

"아저씨, 다 뒤져도 이천오백팔십원밖에 안 되네요."

 

주인 아저씨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집에 갈 차비는 돼요?"

 

"아니요.."

 

"꼭 이거 사야 해요?"

 

"예, 오늘 결혼 기념일이거든요. 그래서 선물 하나 해 주려고요."

 

"알았어요. 이천오백 원에 드릴께요. 나머지는 차비 하세요."

 

그러면서 그 옷을 내 주시는 것 아닌가. 

 

갑짜기 발걸음 날아갈 듯이 가벼워졌어요.

 

집에 도착하니 오후 다섯 시네요.

 

초인종을 누르면서 좋아할 당신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지금 몇 시에요?"

 

앙칼진 당신의 목소리가 나의 아픈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네요.

 

쭈빗거리며 내민 선물은 거들떠보지도 울기 시작하네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더라고요.

 

자리 깔고 누운 당신 옆에 멍하니 앉아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셨어요?

 

겉으로 울지 못했지만 속은 폭포수 같은 눈물을 흘렸어요.

 

전화도 없었으니 연락할 길이 없었잖아요. 그래서 당신이 이해할 줄 알았는데....

 

그 날 그렇게 서로 저녁도 못 먹고 지나갔지요.

 

다음날 당신은 또다른 눈물을 보였어요.

 

그 때는 기쁨의 눈물이었어요.

 

당신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나의 마음은 하늘을 날 것 같았어요.

 

지금은 이렇게 옛이야기 같지만 정말

 

"가난한 날의 행복"이었어요.

 

지금도 당신을 향한 사랑은 그 날의 행복이랍니다.

 

                <당신과의 만남 27주년을 기념하면서 드리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