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 시절, 본인은 당시 안기부의 요청으로 김현희의 치과 진료를 김대중이 집권하기 전까지 담당한 바가 있다. 당시 안기부 고(高)모 수사관을 비롯한 2~3명의 경호원이 여의도에 있는 본인의 병원에서 함께 진료시간을 오랫동안 보냈었고, 그래서 김현희 치과 진료는 철저한 보안 속에 몇 년간 이루어졌었다. 김현희를 처음 진료하는 날! 저렇게 아름답고 고운 처녀가 KAL기를 폭파하다니 참으로 ‘공산주의 이념’은 무섭구나 하는 전율- 온통 그 느낌뿐이었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왜 하필이면 ‘여의도’에 있는 나의 치과를 선택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그것은 아마도 본인이 과거 대통령 주치의로서, ‘보안성’이 강한 전력을 고려하여 김현희에게 대한민국의 실상을 교육시켜 주기 위해 외부 진료를 실시하게 되었다고 나중에 들었던 적이 있다. 김현희를 처음 본 순간 새하얀 피부에 그러나 억세고 강인한 북한 말투의 끝자락에서 그가 ‘무서운 특수 교육’을 받았음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김현희가, “여자가 눈물을 흘릴 때”와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 라는 책을 몇 권씩 저술할 때마다 본인에게 손수 친필로 새해맞이 카드나 책 첫 장에 ‘감사의 글을 써 보냈었던 인간미 있는 김현희였다. 가끔 김현희를 생각할 때마다 “이 좌파 정권하에서 참으로 고초를 많이 겪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서는 저 무시무시한 김대중, 노무현 좌파 정권 압박 속에서도 김현희를 잘 돌보아 주실 것’이라는 기도어린 바람을 자주 하곤 했었다. 진료가 끝나면 한 20-30분은 커피를 마시면서 자주 가벼운 담소를 수사관과 김현희와 함께 하곤 했었는데, (물론 기념사진도 가끔은 찍었다.) 어느 날 진료가 끝난 후, 나는 김현희에게 불쑥 이런 질문을 던진 기억이 새롭다. “김현희씨! 맨몸으로 남자 몇 명 정도 해치울 수 있소?” 하고 웃으며 묻자, 김현희는 생글생글 웃으며 즉답하기를 “두 명 정도는 자신이 있어요”라고 하는 그의 다부진 모습에서, 진료할 때마다 그를 보면서 느꼈던 강인한 그의 체형이 숱한 무술과 이념 훈련으로 단련되어 있었음을 새삼 느끼곤 했었다. 김현희를 안기부에서 민간 병원인 여의도까지 보낸 것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바깥 세상에 적응 훈련을 시키기 위한 목적의 일환이었음은 물론이다. 진료가 끝난 어떤 날은 경호원이 ‘오늘은 신세계 백화점을 구경시켰다’는 전언을 듣고, ‘신세계 백화점에 가보니 어땠었냐’고 내가 묻자 ‘굉장히 복잡하고 물건들이 많아 무척 재미있었어요’라고 수줍게 웃으며 말했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 김현희 소식은 갑자기 감감해졌고 다만 당시 그를 수행했던 어떤 수사관과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는 말을 누군가로부터 전해 듣고 행복하고 무사하게 잘 살기를 간곡히 기원해 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KAL기 폭파 사건의 범인인 김현희씨가 ‘조작’된 사람이라는 일부 매스컴의 보도가 의도적으로 쉴새없이 나돌기 시작했다. 과거사 위원회가 조사한다는 등등… 친북좌파들이 김현희를 놓고 압박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드디어 좌파 정권이 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했구나’ 하고 생각 해 보니 분노가 치밀었다. 김현희가 조작되었다는 그러한 소리를 듣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기 시작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는 내가 아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틈만나면 김현희 KAL기 폭파사건이 결코 조작이 아니라
‘위성국가’로 만들려고 시도했던 바로 그 악랄한 점이라고 확신한다. 차제에 역사 왜곡을 담당했던 친북 좌익들의 집대성인 인권 위원회와 과거사 위원회에 몸담았던 악질 친북좌익 관련된 자들을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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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현희 담당 치과의사였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본인은 당시 안기부의 요청으로 김현희의 치과 진료를 김대중이 집권하기 전까지 담당한 바가 있다. 당시 안기부 고(高)모 수사관을 비롯한 2~3명의 경호원이 여의도에 있는 본인의 병원에서 함께 진료시간을 오랫동안 보냈었고, 그래서 김현희 치과 진료는 철저한 보안 속에 몇 년간 이루어졌었다. 김현희를 처음 진료하는 날! 저렇게 아름답고 고운 처녀가 KAL기를 폭파하다니 참으로 ‘공산주의 이념’은 무섭구나 하는 전율- 온통 그 느낌뿐이었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왜 하필이면 ‘여의도’에 있는 나의 치과를 선택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그것은 아마도 본인이 과거 대통령 주치의로서, ‘보안성’이 강한 전력을 고려하여 김현희에게 대한민국의 실상을 교육시켜 주기 위해 외부 진료를 실시하게 되었다고 나중에 들었던 적이 있다. 김현희를 처음 본 순간 새하얀 피부에 그러나 억세고 강인한 북한 말투의 끝자락에서 그가 ‘무서운 특수 교육’을 받았음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김현희가, “여자가 눈물을 흘릴 때”와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 라는 책을 몇 권씩 저술할 때마다 본인에게 손수 친필로 새해맞이 카드나 책 첫 장에 ‘감사의 글을 써 보냈었던 인간미 있는 김현희였다. 가끔 김현희를 생각할 때마다 “이 좌파 정권하에서 참으로 고초를 많이 겪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서는 저 무시무시한 김대중, 노무현 좌파 정권 압박 속에서도 김현희를 잘 돌보아 주실 것’이라는 기도어린 바람을 자주 하곤 했었다. 진료가 끝나면 한 20-30분은 커피를 마시면서 자주 가벼운 담소를 수사관과 김현희와 함께 하곤 했었는데, (물론 기념사진도 가끔은 찍었다.) 어느 날 진료가 끝난 후, 나는 김현희에게 불쑥 이런 질문을 던진 기억이 새롭다. “김현희씨! 맨몸으로 남자 몇 명 정도 해치울 수 있소?” 하고 웃으며 묻자, 김현희는 생글생글 웃으며 즉답하기를 “두 명 정도는 자신이 있어요”라고 하는 그의 다부진 모습에서, 진료할 때마다 그를 보면서 느꼈던 강인한 그의 체형이 숱한 무술과 이념 훈련으로 단련되어 있었음을 새삼 느끼곤 했었다. 김현희를 안기부에서 민간 병원인 여의도까지 보낸 것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바깥 세상에 적응 훈련을 시키기 위한 목적의 일환이었음은 물론이다. 진료가 끝난 어떤 날은 경호원이 ‘오늘은 신세계 백화점을 구경시켰다’는 전언을 듣고, ‘신세계 백화점에 가보니 어땠었냐’고 내가 묻자 ‘굉장히 복잡하고 물건들이 많아 무척 재미있었어요’라고 수줍게 웃으며 말했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 김현희 소식은 갑자기 감감해졌고 다만 당시 그를 수행했던 어떤 수사관과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는 말을 누군가로부터 전해 듣고 행복하고 무사하게 잘 살기를 간곡히 기원해 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KAL기 폭파 사건의 범인인 김현희씨가 ‘조작’된 사람이라는 일부 매스컴의 보도가 의도적으로 쉴새없이 나돌기 시작했다. 과거사 위원회가 조사한다는 등등… 친북좌파들이 김현희를 놓고 압박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드디어 좌파 정권이 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했구나’ 하고 생각 해 보니 분노가 치밀었다. 김현희가 조작되었다는 그러한 소리를 듣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기 시작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는 내가 아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틈만나면 김현희 KAL기 폭파사건이 결코 조작이 아니라
‘위성국가’로 만들려고 시도했던 바로 그 악랄한 점이라고 확신한다. 차제에 역사 왜곡을 담당했던 친북 좌익들의 집대성인 인권 위원회와 과거사 위원회에 몸담았던 악질 친북좌익 관련된 자들을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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