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만도 못한 28년 삶, 北 정치범 수용소,
부모·동생·남편도 그 곳에서 잃었다"
- [ 제네바(스위스)=안준호 기자 ]
입력 : 2011.11.24 03:06 | 수정 : 2011.11.24 09:24
제네바 北인권국제회의 증언
북한 정치범수용소 수감생활을 했던 김혜숙씨가 인권유린 실상을 설명하고 있다. /안준호 기자 libai@chosun.com
"13살 때 영문도 모른 채 온 가족이 평안남도 북창군 봉창리 18호 관리소(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갔습니다. 28년간 수감됐다가 마흔 넘어 나왔습니다. 관리소를 나와서야 오래전 할아버지가 월남했기 때문에 수감됐단 걸 알았습니다."
2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11회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에서 2009년 한국에 입국한 여성 탈북자 김혜숙(가명·49)씨가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참상에 대해 증언했다.
평양에서 태어난 김씨는 1975년 2월 온 가족과 함께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돼 2002년 8월까지 28년간 "개만도 못한 삶을 살았다"고 했다.
◇나는 개만도 못한 수용소 인간
수용소에서 동생 2명이 태어났고, 김씨도 결혼해 자식 둘을 낳았다. 친할머니와 부모, 남동생, 남편을 모두 그곳에서 잃었다. 자식 둘은 수용소를 나오자마자 2003년 8월 홍수로 잃었다.
김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16세 때부터 탄광에서 하루 16~18시간씩 석탄을 캤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은 석탄을 캐다 잘렸고, 볼엔 석탄가루가 박힌 시커먼 흉터가 아직도 남아있다.
강제 노역에 시달리면서도 일곱 식구의 한 달 배급량은 강냉이 6~7㎏이 전부였다. 김씨는 "그곳에선 그저 배불리 먹어보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었다"며 "지옥 같은 그곳에서 심지어 자기 자식을 잡아먹었다는 여자도 둘이나 봤다"고 했다.
2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11회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에서 2009년 한국에 입국한 여성 탈북자 김혜숙(가명·49)씨가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참상에 대해 증언했다.
평양에서 태어난 김씨는 1975년 2월 온 가족과 함께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돼 2002년 8월까지 28년간 "개만도 못한 삶을 살았다"고 했다.
◇나는 개만도 못한 수용소 인간
수용소에서 동생 2명이 태어났고, 김씨도 결혼해 자식 둘을 낳았다. 친할머니와 부모, 남동생, 남편을 모두 그곳에서 잃었다. 자식 둘은 수용소를 나오자마자 2003년 8월 홍수로 잃었다.
김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16세 때부터 탄광에서 하루 16~18시간씩 석탄을 캤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은 석탄을 캐다 잘렸고, 볼엔 석탄가루가 박힌 시커먼 흉터가 아직도 남아있다.
강제 노역에 시달리면서도 일곱 식구의 한 달 배급량은 강냉이 6~7㎏이 전부였다. 김씨는 "그곳에선 그저 배불리 먹어보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었다"며 "지옥 같은 그곳에서 심지어 자기 자식을 잡아먹었다는 여자도 둘이나 봤다"고 했다.

‘1969년 KAL기 납치 피해자 가족회’황인철 대표가 23일 가족사진을 펼쳐보이며 납북자 생사 확인과 송환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호소하고 있다. /안준호 기자
◇42년 만에 다시 부르는 思父曲
"제가 2살 때 국제적십자위원회 등 국제사회에 아버지의 송환을 호소하기 위해 찍은 가족사진입니다. 42년이 흘렀지만 아버지는 돌아오시지 않고, 생사 확인도 안 돼 다시 이 사진을 들고 제네바에 왔습니다."
빛바랜 사진들을 펼쳐보이는 '1969년 KAL기 납치피해자 가족회' 황인철(44) 대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1969년 12월 11일 대관령 상공에서 납북된 KAL기 탑승객 영동MBC(현 강릉MBC) PD 황원(당시 32세)씨의 장남이다. 북한은 납치 직후 국제 사회의 비난이 빗발치자 1970년 2월 승객과 승무원 50명 중 승객 39명을 송환했지만 황원씨를 포함한 승객 7명과 승무원 4명 등 11명은 풀어주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납북으로 어머니는 서서히 제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다.
북한인권시민연합과 휴먼라이츠워치(HRW), 브라질 인권단체인 코넥타스가 공동 주최하고, 조선일보 등이 후원한 이날 회의엔 유엔인권이사회 15개 이사국 대표와 인권단체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제가 2살 때 국제적십자위원회 등 국제사회에 아버지의 송환을 호소하기 위해 찍은 가족사진입니다. 42년이 흘렀지만 아버지는 돌아오시지 않고, 생사 확인도 안 돼 다시 이 사진을 들고 제네바에 왔습니다."
빛바랜 사진들을 펼쳐보이는 '1969년 KAL기 납치피해자 가족회' 황인철(44) 대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1969년 12월 11일 대관령 상공에서 납북된 KAL기 탑승객 영동MBC(현 강릉MBC) PD 황원(당시 32세)씨의 장남이다. 북한은 납치 직후 국제 사회의 비난이 빗발치자 1970년 2월 승객과 승무원 50명 중 승객 39명을 송환했지만 황원씨를 포함한 승객 7명과 승무원 4명 등 11명은 풀어주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납북으로 어머니는 서서히 제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다.
북한인권시민연합과 휴먼라이츠워치(HRW), 브라질 인권단체인 코넥타스가 공동 주최하고, 조선일보 등이 후원한 이날 회의엔 유엔인권이사회 15개 이사국 대표와 인권단체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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