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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타는 목마름…

하얀제비 2006. 3. 23. 05:52

아프리카의 타는 목마름…

   

“세상이 잠잠하니 좀 한가하시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초대형 재난이 쓰나미처럼 파죽지세로 밀려오고 있다.

“3월 14일을 기해 동아프리카 전 지역을 ‘카타고리 3’으로 공포한다.”

“전 세계 긴급구호요원 전원은 48시간 내 출동할 수 있도록 대기하라.”

이번에는 동아프리카다. 소말리아, 케냐, 에티오피아 등에 45년 만에 온 최악의 가뭄으로 40도가 넘는 사막에서 몇 달째 물 한 컵으로 한 가족이 하루를 견디는 상황이란다. 다음달까지 비가 안 오면 1400만명이 아사(餓死) 위기인데, 비 올 확률이 거의 없다는 기상예보다. 국제구호기구들은 일제히 가동자원을 총동원하라는 ‘카타고리 3’을 선포했고, 월드비전 한국도 6억원의 긴급자금을 확보, 케냐와 소말리아에 지원하고 조만간 나를 포함한 요원들이 파견될 예정이다.

그러나 세상은 잔인할 정도로 잠잠하다. 우리나라 인구의 4분의 1이 굶어죽는다는데…. 3월 초순,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 때 이곳의 식량위기가 신문, 방송에 언급되기를 애태우며 기대했는데….

“또 아프리카야!” 사람들의 이런 반응도 심심치 않다. 나도 이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아프리카의 기근은 이상기온과 더불어 에이즈 창궐, 막대한 부채, 식민통치의 잔재 등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을. 때문에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국제사회의 지원 없이는 아프리카 식량위기의 악순환을 절대로 끊을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한 예로, 소말리아 국경지대인 케냐의 와지르는 1995년, 대기근의 직격탄을 맞은 곳이다. 월드비전 한국은 살아남은 주민들에게 식량배분과 함께 한국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농업개발 및 보건사업을 꾸준히 펼쳐왔다. 덕분에 같은 와지르라도 우리가 돌보는 지역주민들은 이번 대기근에 잘 대처하고 있는 반면, 다른 곳에서는 연일 처참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공적개발원조’라는 것이 있다. 잘사는 나라가 가난한 나라의 자립과 발전을 위해 지원하는 자금이다. 한국은 1987년 시작했다. 이 원조 중 무상원조는 한국국제협력단을 통해, 유상원조는 수출입은행을 통해 지원된다. 이 한국국제협력단의 무상원조 중 약 2%가 민간단체를 통해 세계 깊은 곳까지 전해지면서, 내가 낸 세금이 와지르에서처럼 물이 되고 씨앗이 되고 농기구가 되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이 원조금 때문에 싫은 소리 많이 들었다. 국제원조의 최대 수혜국이었던 한국이 살 만해진 지금, 다른 나라를 돕는 데 어찌 그리 인색하냐는 거다. 듣기 싫지만 사실이다. 우리가 원조받은 액수는 총 130억달러인데 원조총액은 약 22억달러이고 국민총소득의 0.06%, 1인당 한달에 약 400원 정도를 내고 있다. 우리 경제규모와 위상에 걸맞으려면 적어도 2배로는 올려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래야 적어도 인색한 나라라는 말은 듣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이 공적원조도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어 전체 ODA의 5% 정도만을 아프리카 지원에 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ODA가 두배로 늘어난다고 해도 아프리카를 위해서 뭔가 다른 획기적인 재원마련이 꼭 필요하다.

올 2월 말, 파리에서 93개국 정상들과 국제기구들이 모여 항공권 연대기금을 만들자는 제의가 있었다. 비행기표를 살 때 일정액을 기부하며 세계화를 통한 이익의 일부를 개도국, 특히 아프리카 발전을 위해 쓰자는 취지다. 이미 13개국이 이 안을 도입했고 우리나라도 검토 중이라고 알고 있다. 한번 해외에 나갈 때마다 1달러, 약 1000원 정도의 기부라면 기꺼이, 기분 좋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모인 돈이 아프리카 사회기반을 단단하게 만드는 데 쓰여, 앞으로의 식량위기에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자생력을 키워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3, 4월 중에 동아프리카에 비가 흠뻑 내려 한국 긴급구호팀이 출동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제발, 하늘이시여!


 

한비야 ·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