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애국가 옮김(2006.8.30) 출처 : 에듀넷 통합검색(검색어-애국가)>고등학교 1학년 공통 도덕
애국가(합창)-제1절
http://down.edunet4u.net/KEDLAA/06/C1/0/C10066128S.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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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애국가 옮김(2006.8.30) 출처 : 에듀넷 통합검색(검색어-애국가)>초등학교 6학년 공통 음악
애국가 (어린이 목소리) 제1절
http://down.edunet4u.net/KEDLAA/12/A6/0/A60123090S.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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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애국가 악보 옮김(2006.8.31) 출처 : 대한민국국기선양회 홈 왼쪽 하단 '애국가 듣기'
출처 주소 : http://www.koreaflag.org/anthem.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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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 전체 옮김(2006.8.15) 출처 : 주엽고등학교 > 문촌 선생의 뿌리를 찾아서 > 애국가
원문 주소 : http://jygo.net/root/a.htm (일부 순서를 바꾸어 다시 편집하였습니다.)
(1) 애국가의 예절과 악보
애국가를 부를 때는 가사를 통해 조상의 빛난 얼을 되살리고, 국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몸과 마음을 다해 민족과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결의를 다짐해야 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정중하게 부릅니다.
애국가의 곡조에 다른 가사를 붙여 부르거나, 또는 곡조를 변경하여 불러서 애국가의 존엄성을 손상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보행 중에 애국가(주악도 마찬가지임)가 들려오면 걸음을 멈추고, 애국가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향하여 바른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물건을 손에 들었을 때에는 그 자리에 놓고 바로 서서 듣습니다.
옥내외 집회 행사에서 애국가를 부를 때에는 참석자는 물론, 일반 관중도 다같이 힘차게 애국가를 제창토록 하며, 의식의 성격,여건 등으로 인하여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4절까지 제창하도록 합니다.
학생들은 애국가가 들려 오면 뛰어다니거나 장난을 하지 않습니다.
(2) 애국가의 작곡자, 안익태
작사자 미상의 우리나라 국가인 애국가의 가사는 윤치호.안창호.민영환 등이 만들었다는 설이 있으나 어느 것도 공인되지 않았고, 곡은 1936년에 만들어져 1948년 8윌 15일 정부수립과 함께 대한민국 국가로 불리게 되었다.
정부에 의하여 정식으로 국가로 제정되거나 채택된 것이 아니라, 관습적으로 국가로 불리다가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작곡자가 <애국가>의 가사를 처음 접한 것은 1919년 3.1운동 때였고, 그 뒤 <애국가>가 스코틀랜드 민요
곡은 가장조(또는 사장조), 4분의 4박자로 되어 있으며, 속도는 느리고 장중한 분위기의 악상을 가지고 있다. 모두 16마디로 되어 있으며, 4절의 가사로 된 유절형식과 a-b-c-d의 구조로 된 가요 두도막 형식으로 되어 있다. 간결하면서도 장중한 것이 특징인 <애국가>는 사용 용도에 따라 세가지로 구분된다. 피아노 반주로 된 것이 원곡이고, 아무런 반주 없이 부르는 것과 악기만으로 연주되는 것이 있다. 반주가 있는경우에는 4마디의 전주가 있고, 악기만으로 연주되는 경우에는 전주가 없다. 작곡자는 이 <애국가>를 주제로 하여 1936년 자신의 대표작인 교향곡 <한국환상곡>을 작곡하였다.
안익태 (安益泰)<1906.12.5∼1965.9.16>
작곡가·지휘자. 평양(平壤) 출생.
평양 숭실학교(崇實學校) 재학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가담, 퇴학당한 뒤 일본에 건너가 중학을 마치고 구니타치[國立]음악학교에 들어가 첼로를 배웠다.
1932년 미국 필라델피아 커티스음악학교에 입학, 첼로와 작곡을 배우는 한편 신시내티 교향악단의 제1첼로 주자로 활약하였다. 그 무렵 스토코프스키와 교분을 맺었으며 필라델피아의 카네기리사이틀홀 등에서 독주회를 열어 호평을 받았다.
34년 헝가리로 건너가 도야니에게 작곡을 배우며 민족주의정신과 기법에 영향을 받았다. 이듬해 빈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게 주로 지휘법을 사사하고 36년에는 몇년 전 미국에서부터 착상해 왔던 <애국가>를 작곡했다. 40년까지 슈트라우스의 보조지휘자로 있다가 그 이후부터는 독일에서 독자적 지휘활동를 하고 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에스파냐 여인과 결혼, 에스파냐 국적을 얻고 마드리드 마욜카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었으며 영국·이탈리아·미국 등의 저명한 교향악단을 객원 지휘하기도 하였다. 57년 귀국하여 자작곡 <강천성악(降天聖樂)> <한국환상곡> 등을 지휘하고 61년 다시 귀국하여 국제 음악제를 개최토록 하였으며 63년까지 3회에 걸쳐 주관하였다.
후기낭만파에 속하는 지휘자로서 베토벤, 브람스, 드보르자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의 작품을 즐겨 지휘했다. 65년 에스파냐에서 병사. 57년 문화포상을 받았으며 65년 문화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작품으로는 <애국가> <한국 환상곡> <강천성악> <애! 강산의 의기논개> <애국선열추도곡> 등 다수가 있다.
(3) 애국가의 역사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을 일깨워 주기 위한 노래. 국가(國歌)는 한 나라를 상징하는 국가적 차원의 공식적인 노래인데 비하여, 애국가는 공식.비공식 여부를 떠나 나라를 사랑하는 내용을 담은 노래라는 점에서 이 둘은 구분된다.
애국가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국가로 제정된 애국가는 나라를 상징하는 의식 음악으로서 구실을 하게 된다. 우리 나라의 애국가는 여러 종류가 있다. 즉,갑오경장 이후 각종 애국가가 성창되기 시작하여 1896년 무렵에 각 지방에서 불린 애국가만해도 10여 종류에 이른다.
1876년 일본과 병자수호조약을 체결한 이후 1882년에는 미국, 1884년에는 영국.독일.이탈리아, 1889년에는 러시아와 프랑스, 1892년 에는 오스트레일리아.덴마크, 1901년에는 벨기에 등과 조약을 맺게 되었다. 이와같이 세계 열강국과 문호를 개방하고 새로운 문물을 접하게 됨에 따라 개화에 눈을 뜨게 되었고, 애국애족의 사상과 더불어 내용이 각각 다른 애국가가 도처에서 나오게 되었다.
이 시대에 나온 애국가를 살펴 보면, 1896년 나필균 작 <애국가>, 제물포 전경택의 <애국가>, 한명원의 <애국가>, 유태성의 <애국가>, 달성 예수교인들의 <애국가>, 새문안교회의 <애국가>, 최병희의 <애국가>, 평양 김종섭의 <애국가>, 배재학당 문경호의 <애국가>, 이용우의 <애국가>, 배재학당의 <애국가> 등이 있다.
이 중에서 배재학당 학도들이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에서 부른 <애국가>는 [악보1]과 같다. 그러나 1898년 독립협회가 독립문에서 가진 개국 기원 506돌 경축식에서 무관학도들이 부르고, 초10일 태황제 탄신일에 곳곳에서 부른 애국가는 [악보2]에서 보는 바와 같이 또 다른 내용으로 되어있다. 무관학도들이 부른 <애국가>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그런데 <<증보문헌비고>> 권 103 악고(樂考)에 1900년 시의 <대한애국가>가 소개되어 있다.
이 <대한애국가>는 에케르트 (Eckert, F.)가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에케르트는 광무 5년, 즉 1901년 2월 19일에 서울에 도착하여 그 해 3월 19일에 고종황제를 폐현(陛見)하였고, 1902년 4월 5일에 우리 정부와 용빙계약서(傭聘契約書)를 작성하였으므로 에케르트가 작곡한 곡이 아님이 분명하다. (오른쪽 사진은 대한 제국 애국가가 실린 에케르트의 보고서 표지 : 미국 뉴욕시립도서관 소장)
다시 말하면 배재학당 학도들이 부른 <애국가>는 스코틀랜드 민요인
<대한제국 애국가>는 1902년에 에케르트가 작곡한 것이지만, 그 가사는 [악보2]의 <애국가> 가사와 같이 영국 국가
이와같이 1902년 에케르트 작곡한 <애국가>는 군악대에서 주로 연주되다가 1904년부터는 각급 학교에서 의문적으로 교수하도록 하였다. 그 뒤 에케르트가 작곡한 곡에 가사 내용을 달리한 <애국가>가 나왔는데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상뎨여 우리나라를 도으쇼셔/반만년의 역사 배달민족/영원히 번영하야/해달이 무궁하도록/셩디동방의 원류가 곤곤히/상뎨여 우리 나라를 도으쇼셔." 이 노래는 국치(國恥)의 을사조약(1905)과 정미칠조약(1907) 이후에 1902년에 에케르트에 의해 작곡된 <애국가>의 가사만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 무렵에도 4,5종의 <애국가>가 전파되었는데,그 중에서 현행 <애국가>의 가사와 같은 것은 배종섭 소장 <<창가책>>과 강릉 이기재 소장 <<창가책>> 사본에서 볼 수 있고,"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후렴구는 이미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 때 배재학당 학도들이 부른 <애국가>에서부터 등장한다. (오른쪽 사진은 윤치호 작사 육필본 애국가 : 미국 뉴욕시립도서관 소장) 현행 <애국가>의 가사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윤치호가 지었다는 설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까지는 스코틀랜드 민요인
1절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후렴 :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2절 :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3절 :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4절 :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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