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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느 중년의 사랑 중에서

하얀제비 2005. 12. 23. 14:04

      어느 중년의 사랑 중에서.. ㅡ아, 당신이 너무 보고 싶다.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아직도 그 얼굴 그대로인지.. 당신은 나.. 보고 싶지 않았나? 그래? 전화 목소리라도 듣고 싶은데, 당신이 받을 수 있는 번호 하나 가르쳐주면 안될까. 부담없이.. ㅡ안돼요. 약속이 틀리잖아요. 서로 메일로 간단한 안부만 묻고는 말기로 했잖아요. 더 이상은 앞으로 나가지 말아요. 우리.. 메일도 이제 그만 보내세요. 저.. 이제 답장 안해요. 한동안 지섭에게서는 메일이 오지 않았다. 조금은 마음 깊은 곳이 휑하게 비어있는 듯 했지만 애써 이일 저일을 하며 마음을 비우려 노력하는 정은.. ㅡ그래, 아예 시작도 안하는게 좋아. 불장난이야. 결국은.. 끝이 보이는 게임.. 둘 다 까맣게 타버릴 불장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 지섭에게서의 오랜만의 메일이 왔다. 읽지 않고 바로 삭제시켜 버리려 했던 정은의 검지 손가락이 흔들리고 있었다. 보고 싶었다. 무어라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보고 싶었다. 목소리도 듣고 싶고 얼굴도 보고 싶고 까칠한 그의 턱의 촉감도 그리웠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뻔히 잘 알면서도 밀물처럼 밀치고 들어오는 그리움을 어떻게.... 일주일을 심하게 앓았다. 이마에는 열이 펄펄 끓었고 편도가 심하게 부어 침 삼킬 때마다 몹시 아팠다. 그러나 편도보다 더 아팠던 것은.. 그를 보고 싶어도 보지 말아야 하는 자신의 마음.. 마음이 더 아팠다. 아파 누워 천정을 쳐다보며 정은은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지섭을 그리워하고 있는 자신에게.. 그렇다고 지금의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가. 그것은 결코 그렇지가 않았다. 지금의 남편에 대한 마음과.. 지섭에 대한 그리움과는 별개의 감정이었다. 결혼 후, 지금까지 한눈 한번 돌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한 남편에 대한 무한한 고마움과 안락함, 편안함과는 별도로.. 눈 감아도, 아침에 눈을 떠도, 길을 걸을 때도, 음악을 들어도.. 커피를 마셔도.. 무시로 떠오르는 지섭의 얼굴과 목소리와 가슴과 온기를 떨쳐 내버릴 수가 없었다. 감기가 끝난 후, 정은에게 또 한 번의 메일이 지섭으로부터 날아들어 왔다. 그 날, 정은은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지섭에게 보내는 답장의 한 귀퉁이에다가 자신만이 받을 수 있는 전화 번호를 또렷이 남겼다. 삼일 후에 전화가 왔다. ㅡ 여보세요? ㅡ .........................! ㅡ ..................? ㅡ 이.. 정은.. 씨? ㅡ .........!!!! ㅡ 나.. 누군지 알겠어요? ㅡ 그.. 그러믄요. 알지요. ........! ㅡ 이정은씨 목소리는 그대로네요. 카랑카랑한 목소리 그대로야. ㅡ 그.. 그랬나요? 제 목소리가? ㅡ 지금.. 뭐 해요? ㅡ 아무것도 안해요. 그냥 가만히 있었어요. ㅡ 하하.. 옛날에도 내가 전화해서 "지금 뭐해요?" 하면 늘 아무것도 안한다고 하더니. 맞아.. 그랬었지. 정은의 눈가에 설핏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는 늘 전화해서 첫마디가 "지금 뭐 해?" 였고, 자신의 대답은 늘 "아무것도 안 해요." 였던 기억.. 지섭의 목소리는 옛날과 비슷했지만 다소 톤이 낮아진듯 했다. ㅡ 거기.. 비 와요? ( 지섭 ) ㅡ 예, 많이 와요. 거기는요? ( 정은 ) ㅡ 여긴 안 와요. 날씨 맑아요. ㅡ 예에.. ㅡ 밥은 먹었어요? ( 지섭 ) ㅡ 아니요. 인제 먹을라구 해요. ( 정은 ) ㅡ 얼른 먹어요. 끼니 거르지 말구 많이 먹어요. 많이 먹어 둬요. 그래야 정은씨 보구 싶어서 갑자기 달려가면, 정은씨도 힘차게 뛰어 나오지. ㅡ ..................?? ㅡ 그럼, 잘 지내요. 시간 나면 또 전화 할께. ( 지섭 ) ㅡ 그래요. 끊을께요. ( 정은 ) 통화가 끝난 정은의 눈가에는 알수 없는 물들이 그득 담겨 있었다. 처음으로 많이 좋아했던 사람, 처음으로 처절하게 배신 준 사람, 그 사람 때문에 처음으로 밤을 새워가며 끅끅거리고 울었던 기억들.. 이젠 다른 여자의 남편으로.. 다른 아이들의 아빠로.. 사는 사람.. 이미 내 것이 아닌 사람, 나와는 상관없는 전혀 남남인 사람. 그를 사랑하면 안 되는 관계, 불륜이라고 낙인 찍혀버릴 그런 관계.. 그래도 여전히 마음 속에는 미련이 많이 남은 사람..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사람.. 첫 사랑.. 첫 사랑.. 창밖의 한없이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묘한 스릴감에..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정은. 야!! 이 정은! 너.. 시작하는 구나. 기어이.. 그러다가 너 다쳐. 그 사람도 다치구.. 모두 다 다치게 될 지 몰라. 여기서 그만 끝내. 더 이상 미적미적 끌고 가지는 마. 아니야, 난 아직 그를 사랑하고 있어. 내가 다치고 그가 다치고 우리 넷 모두 다 다친다해도 난 멈출 수 없어. 그를 향해 폭발할 듯이 끓어오르는 내 열정을.. 이미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졌어. 나는 계속 갈꺼야. 그를 향해서.. 가다가 죽는한이 있어도 그래도 갈꺼야. 아무도 날 제어 못해.. 지섭과 정은은 이렇게 사랑이 시작되었다.
    출처 : 새벽 안개
    글쓴이 : 익명회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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