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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진정한‘상도’를 배우다, 이양구

하얀제비 2018. 5. 10. 08:15

2010. 1. 19 SERICEO 강의자료에서 발췌

감성리더십

 

< 진정한‘상도’를 배우다, 이양구 >

 

정진홍

 

Ⅰ. 한 소절 노래 가사 같았던 인생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데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1.4 이후 나홀로 왔다.
일가 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냐.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고나. 고향 꿈도 그리워 진다.
영도 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

 

Ⅱ. 드라마틱한 러브스토리의 주인공

오리온 선대회장 이양구(李洋球, 1916~1989)
• 6.25 발발하던 해, 교사 이관희와 약혼.
• But, 중공군 전쟁 개입으로 생이별.
• 약혼녀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
• 뒤늦게 피란선 타고 월남.
• 거제도에 있던 이관희와 극적으로 만남.
• 영도다리 근처에 신혼집 마련.

Ⅲ. 동양 창업주, 서남(瑞南) 이양구

• 1916년 함남 함주군의 작은 농가 차남 출생.
- 부친 : 이교흠(향년 25세 나이로 병사), 모친 : 김성자
• 홀어머니 밑에서 힘들게 생활.
• 15세 때 보통학교 졸업장 취득.
• 상급진학 포기, '함흥물산(일본인 시노자키가 운영하던 식료품 도매상)' 취직.

'정직과 신용'의 상도(商道)를 깨우치다!

Ⅳ. 시노자키 사장님의 가르침

두부심부름을 시켰더니, 식은 두부를 가져온 이양구…
"두부가게는 걸어서 5분 거리다. 그런데 너는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느냐?"
"큰길로 가면 오고 가는 친구들하고 마주칩니다. 그게 부끄러워 뒷골목으로 돌아왔습니다."
"잘 생각해봐라, 냄비를 들고 대로로 가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운지, 아니면 냄비를 든 모습을 부끄러워하면서 남들의 시선을 피해 골목길로 숨어 다니는 그 모습이 더 부끄러운지를"

이양구 회장의 평생의 좌우명 -

"무슨 일을 하는 가는 중요하지 않다. 열심히 일하는 자세가 중요하며, 무엇보다 나의 일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Ⅴ. 운명을 가르는 상도를 배우다!

입사 6년 만에 간부사원으로 승진.
"사실 소학교만 졸업하고 사환으로 들어와서 6년 만에 간부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

모름지기 상인으로 대성하려면 정직을 목숨처럼 알아야 하네. 정직이 신용을 낳고, 신용이 곧 사업을 이루게 되니까. 그리고 앞날을 개척해 나가는데 언제나 스스로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게.
남보다 뛰어났다거나 잘났다는 교만은 금물이네.
아울러 어물어물 대충 넘어가는 것은 절대 안 되네.
그리고
고객을 하늘처럼 모셔야 해. 그러한 마음이 늘 몸에 배 있어야 한다네.
그리고 잊지 말게.
자네는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네 자신을 파는 것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어떤 자신을 팔 것인지 깊이 숙고하기 바라네."

Ⅵ. 정상에서 다시 바닥으로

• 1938년 4월 독립, 대양공사를 필두로 막대한 부 형성.
But, 6.25 발발로 수 십만 평 토지와 현금 1억 손실.
• 부산에서 설탕도매업 시작, 재기 발판 마련.
전시의 특수경기와 생필품 부족 현상 활용.
부산, 마산, 대구 등에서 '설탕왕'으로 등극.
• 삼척시멘트 사업 인수, 동양시멘트공업주식회사로 사명 변경(1957)
노후시설 교체 및 증산, 시멘트 왕국 건설

 

Ⅶ. 위기의 순간, 그를 일으킨 힘

시멘트 신규업체의 대거 진입
• 넘치는 시멘트 재고, 정부의 금융긴축정책 → 사업이 흔들리기 시작
• 결국 법원에 회사보전신청 제출 (1971.9.10)
But, 정부의 사채동결조치와 정직과 신용의 상도를 지킨 덕분에 위기돌파!
• 이후 제과업체 진출, 동양제과 소생에 매진.
대규모 초콜렛 과자공장 건립(전북 익산)

Ⅷ. 이양구 회장의 선견지명

"이제 저 서해가 아주 큰 길이 될 거야. 중국이 이제 곧 개방한단 말이지.
지구인 4명 중에 하나가 중국인이야. 그런 중국이 문을 열면 세계 경제 질서가 바뀌지 않겠어? 제과시장도 무진장 열릴 거니까 대비해야지.
군산항까지 가까이 있으니 얼마나 매혹적인가?"
"길어도 10년 안에 수교가 될 거야. 그럼 대기업이 제과사업에 뛰어들겠지.
그러니 그때를 대비해 우리가 지금 규모를 키우지 않으면 안 돼.
생각해 보게. 10억 명의 소비자가 기다린단 말이야"

 

 

Ⅸ.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 1983년 뇌졸중으로 투병.
• 1986년 동양제과 제 3공장의 초코파이 생산라인 가동.(전북 익산)
• 1997년 초코파이 중국 진출, 제과분야의 한류를 일으키다.
But, 초코파이 한류열풍을 못 보고 1989년 10월 19일 향년 73세로 별세.

Ⅹ. 동양보다 큰 사람

자전거 뒤에 설탕 포대를 싣고 시장 통을 누비면서도 큰 바다로 나아가는 꿈을 꿨던 사람 이양구 회장.

"사업은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파는 것이다"는 시노자키 사장의 가르침을 평생 실천했던 사람.

숱한 시련과 좌절 속에서도 오뚝이 정신으로 일어나고, "성공한 길로 가지 말고 실패한 길로 다시 가라!"고 일갈하던 집념의 경제인 이양구 회장은 우리시대를 이끈 진정한 감성의 장사꾼.

 

 

 

 

 

 

 

(박철원 옮김)

출처 : 무릎어깨관절을 한방에 김준식원장
글쓴이 : 건강검진 도우미 원글보기
메모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