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팔 여행기(15)-마지막편
인도.네팔 여행기(15)
2월 1일 목요일. 일정 중 마지막이다. 그 동안 정신없이 다녔지만 아쉬움도 많은 여행이다.
오전 중에 모든 일정이 끝나야 하기 때문에 오늘은 8시에 버스에 오른다.
먼저 갈 곳은 암베르성.
자이푸르에서 북쪽으로 11km 떨어진 구릉 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암베르는 1037~1726년까지 카츠츠와하 왕조의 수도였던 곳이다.
암베르성은 절벽 위에 세워진 천혜의 요새다. 라지프트 왕은 무굴황제 악바르와의 혼인 동맹을 통해 자신의 여동생이 악바르의 왕비가 되게 하였다. 이후 왕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마하라자 만 싱(Man Singh)에 의하여 1592년에 건설되기 시작하여 자이 싱 때 완성되었다 한다.
<멀리 보이는 암베르성. 천혜의 요새다.>
암베르성은 라지푸트 최고의 재력을 자랑하던 카츠츠와하 왕조의 작품답게 화려하고 아름답다. 심지어 종주국이었던 무굴의 황제 제항기르가 암베르성을 방문했을 때는 일부러 덧칠을 하여 본 모습을 감추었다는 일화도 있다.
<외부인 접견실>
우리는 주차장에 버스를 세우고 인솔자의 안내로 코끼리를 타고 암베르성에 오르기로 하였다. 입구에서부터 늘어선 행렬은 50여 미터나 된다.
2인 1조로 코끼리 등에 올라 성으로 향한다. 앞에서 가던 코끼리는 힘이 든지 가는 중간에 변과 함께 오줌을 한바가지나 쏟는다. 어린 코끼리들은 오를 때 힘이 들면 이런 행동을 한다고 한다.
<코끼리 차(?)가 아름다운 치장을 하고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이렇게 코끼리를 고생시키며 성 안에 들어서니 코끼리차(?) 하차장에 내려 준다. 내린 곳의 반대편으로 보면 궁전으로 통하는 계단이 나온다. 이 계단을 오르면 입장료와 사진 촬영료를 지불하는 곳이 나온다. 계단을 오르면서 왼쪽으로 라자스탄 악사의 길고 구슬픈, 때로는 흥에 겨운 전통음악을 한 곡 듣게 될 것이다.
<코끼리 차?M 하차 지점에서 내리고 있다. 팁은 1불>
입장을 하면서 처음으로 대하는 것이 바로 디와니암(공공접견실)이다. 제항기르가 탐색을 위해 보낸 사자를 맞게 된 자이싱 1세는 호화롭게 장식된 공공접견실의 곳곳을 덧칠하여 눈가림을 하였다고 한다. 다외니암을 통과하면 1640년경에 제작된 가네쉬 폴이 나온다. 화려한 색들의 모자이크와 벽화들로 가득 채워진 아름다운 문이다.
<가네쉬 폴 입구>
이곳에서 더 들어가면 정원을 끼고 여러 가지 형식으로 된 거주지가 나오는데 오른쪽에는 차가운 물을 흐르도록 하여 냉방의 효과를 낸 수크니와스가 있다. 정원의 안쪽에는 내부의 장식들도 아름답지만 창가에서의 전망도 뛰어난 자이만디르가 있는데 이곳의 압권인 시쉬마할이다. 작은 공간이지만 온벽이 아주 작은 거울들로 치장되어 있어 방문을 닫고 불을 켜면 수없이 많은 빛들이 반짝이는 광경을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방들의 내부 모습들>
또한 커튼에 물방울이 이슬처럼 흐르게 하여 더위를 식혔다는 가느다란 관도 남아 있고 물을 벽으로 흐르게 하여 온도를 낮추는 구실을 하도록 하기도 하였으니 그 지혜로움과 호사스러움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 뒤로는 12개의 방이 나타나며 이것은 만싱의 12부인이 각각 사용하던 방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역사를 가득 안은 암베르성을 뒤로 하고 핑크시티로 향한다.
무굴제국이 무너져가던 무렵인 1727년 자이싱 2세는 본거지를 암베르에서 자이푸르로 옮겼다. 자이푸르가 바로 핑크시티로 알려진 곳이다.
핑크시티란 이름이 붙여진 것은 19세기 중반이다. 1876년 이 일대의 지배자였던 자이싱 2세는 웨일즈 왕자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도시를 핑크빛으로 칠하란 명령을 내렸다. 인도에서 붉은빛은 환영을 의미한다. 지금도 왕이 살던 궁전도 핑크빛이고, 거리의 1~2층짜리 상가도 모두 핑크빛이다. 비록 색은 좀 바랬지만 올드시티 대부분이 핑크빛이다.
<바람의 성 외부 전경>
핑크시티의 시티게이트를 지나 걷다보면 200~300여 년 된 건물들이 나온다. 핑크빛으로 칠해진 이 건물들의 1층은 대개 상가다. 신발가게, 액세서리가게, 옷가게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를 조금 지나면 하와마할(Hawa Mahal)이 나온다. 하와마할은 궁전의 부녀자들이 시가지에서 벌어지는 축제나 행진을 지켜볼 때 이용되었던 건물로 앞모습이 마치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처럼 생겼다.
궁전과 가까운 곳의 시가지가 보이는 장소에 1799년 당시의 마하라자인 스와이 프라답 싱이 건설했다. 벌집과 같은 형태의 창살로 이루어져 바람이 잘 통하는 격자형 창문들이 줄지어 이어진 형식으로 지어져 바람궁전(Palace Of Wind)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이 하와마할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관광을 계획했으나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서 곧바로 시티팰리스로 향하기로 한다.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시티팰리스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굴욕적인 역사를 안고 태어났다. 그러나 현재는 이 도시가 관광의 도시로 탈바꿈되어 이곳 사람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돕는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시티팰리스 내부 전경. 왕이 출타 중이다.>
시티팰리스는 핑크시티의 대표적 건물답게 붉은색이 흰색의 건물에 아름답게 덧칠되어 세밀하고 정교한 솜씨가 느껴진다.
'도시 속의 궁전'이라는 이곳은 1693-1743년 자이싱 2세가 지은 7층 규모로 현재에도 그의 후손 라자가 기거하고 있는 성이다, 이곳의 왕은 보기가 인도의 대통령을 만나기보다 어렵다고 한다.
궁전 안은 마하라자(위대한,Maha 왕,Raja 의 합성어)가 살고 있는 구역과 마하라자 사와이 만싱 2세 박물관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다. 방문객의 경우 궁 안의 일부 구역의 입장만 허용된다.
봉건 영주 제도인 라자 제도가 1951년 없어지고, 1971년 법률적으로 특권을 인정하지 않자 자구책으로 성을 호텔로 개조하기도 하였으며 , 이곳 시티팰리스는 대대로 전해진 무기와 의복 등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개조해 명성과 부귀를 영위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은 물통>
<총을 진열된 모습에서 인도인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다.>
인도 전역에 아직도 라자가 100명 정도 유지되고 있고, 라자스탄에만 45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한다. 이들에 대한 법률적 특권은 폐지되었으나 마을사람들에게의 영향권은 아직도 건재하다고 한다.
70세에 가까운 현재의 라자가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는 상징의 기(旗)가 라자스탄 주의 깃발 아래 펄럭거리고 있다. 기가 올려져 있을 때는 왕이 성의 내부에 있음을 상징하고 기가 내려져 있을 때는 왕이 출타 중임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의 왕비는 미인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왕비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지금도 이곳 라자는 갠지스 물을 먹고 있다하니 인도의 갠지스는 그들만의 신성한 성수임은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시티팰리스 박물관에는 왕비가 입었던 9km의 금실로 짠 사리(무게가 30킬로그램)와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은항아리가 있다. 디와니 암이라는 일반 접견실과 디와니 카스라는 특별 접견실 외에 정밀한 그림과 라자들의 초상화도 볼만하고 라자들이 입었던 옷들의 화려함과 귀품스러움은 요즈음 어떤 디자이너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이다.
영국 지배 시절 영국 에드워드 7세 왕세자 대관식에 참석 초대를 받아 배를 타야 했던 마호싱 2세가 바다를 건너면 자신의 지위를 잃는다는 흰두교의 믿음 때문에 갠지스 물을 가지고 가기 위해 만든 기네스 북에 올려진 세계에서 제일 큰 단일 은제품 항아리 2개와 그들이 사용했던 각종 무기도 아름다운 모양으로 전시되어 있다.
이곳 관광을 마치고 돌아서 나오는데 그렇게 만나기 어렵다던 왕이 탄 차가 천천히 궁궐 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사진 찍을 겨를도 없이 지나간다. 단지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저 문을 통해 왕이 들어오고 있었다.>
시티팰리스 가까운 곳에는 천문관측소인 잔타르만타르가 있다. 여러 가지 기하학적 조형물들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아왔던 해시계와 같은 것들도 있고, 별을 관측하는 데 썼을법한 조형물들이 있다.
<천체를 측정한다는 기구>
사진을 찍는데 3불을 내라 하니 시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가신다. 그 덕분에 기록물은 없지만 그다지 볼거리는 없었다.
지금은 12시. 이제 기나긴 여행의 대미를 장식했다.
<인도의 선거 유세 장면. 선거철인가 보다.>
그 동안 힘들었던 과정도 마무리되고 이제 점심 식사 후 곧바로 델리로의 긴 여정만 남았다.
버스로 10시간, 240킬로미터를 가야 한다. 우리의 교통 시스템으로 한다면 3시간이면 충분하지만 인도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특성이 있다.
클락스 호텔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1시 30분 버스에 오른다.
가는 버스에서 있었던 재미있던 많은 이야기는 사진으로 대신하고 대미를 장식하려 한다. 그 동안 지루하게 이끌어왔던 졸필의 인도.네팔 여행기를 읽어 주신 분들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끝>
<델리로 가는 도중 급해서 .....>
<델리 공향에서 기다리는 동안 달콤한 잠에 빠져 있다.>
<인도를 떠나 비행기에 올라 구름 위를 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