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

인도.네팔 여행기(5)

하얀제비 2007. 6. 4. 09:26
 

인도.네팔 여행기(5)


버스를 타고 20여 분 달리니 데이빗 폭포에 도착했다고 알린다. 팻말도 유적지 표시도 없다.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관광 안내 책자를 사달라고 10달러를 외치며 따라 붙는다. 그러나 인도처럼 악착같지는 않다. 다행이었다. 못들은 체 하면서 내 갈 길을 재촉한다.

좁은 골목길 끝으로 입구가 나오더니 곧이어 계단이 보인다. 계단 손잡이들을 하늘색으로 칠해 놓으니 생각보다 깨끗하게 보인다. 인도보다는 전반적으로 깨끗하다. 그러나 겉으로 보아서는 폭포라고 하기에는 왜소하다.

 

<데이빗 폭포 입구>

<파란색으로 칠한 경계막이 깨끗해 보인다.>

<데이빗이 자살하였다고 하는 폭포,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데이빗 폭포>

분명 데이빗은 서양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유적지로 삼아 서양인과 네팔 여인의 애틋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관광 상품화하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네팔 여인을 사랑한 데이빗이라고 하는 서양 청년이 사랑하고 있던 네팔 여성을 폭포 위에서 애타게 기다리다가 여인을 만나지도 못하고 투신하여 자살한 곳이라 하여 청년의 이름을 따서 데이빗 폭포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폭포는 그 깊이를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깊다고 한다. 실제로 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다. 깎아지를 듯한 절벽 틈 사이로 약한 물줄기가 3단 폭포로 흐르는데 겉으로 보아서는 별로 깊어 보이지 않는다. 위험하기 때문에 일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놓고 있었다. 그러나 경비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빠듯한 일정이라 20여 분 관람하고 빠져나와 부지런히 버스에 오른다. 폐와 호수로 이동하여 보트를 타고 관람하는 여정이다.

폐와 호수로 가다가 동료들이 숄을 파는 곳을 안내하라고 조르는 통에 가이드가 면사를 생산하는 공장에 자깐 들르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지나치다가 아이들이 뛰놀고 있는 장면을 보니 학교 같았다. 잠시 버스를 세워 그 학교를 견학해 보기로 즉흥적으로 결정하고 모두 내리니 아이들이 달려와 반긴다. 준비한 것도 없이 무작정 내린 것이라 우리도 당황했다. 아쉬운대로 가지고 있던 사탕봉지를 풀어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무척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도 즐거웠다. 이학교는 사립학교로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우리나라의 야학 정도라고나 할까? 학창 시절에 몸담았던 야학이 생각난다. 교실을 둘러 보고 약간의 지원금을 건네니 그 학교 교장 선생님이 무척 고마워한다. 아이들과 손을 잡으며 등을 또닥거리니 쑥스러워한다.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버스에 오른다.

 

<우리가 도착하자 몰려드는 아이들>

<열악한 교실 전경>

<벽에 학교 이름을 적어 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폐와 호수 가는 중간이라 부담은 없었다. 10여 분 후 면사 공장에 도착하여 생산 공정과 판매하는 곳을 둘러 보니 쓸 만한 것이 없었다. 오히려 공장의 물건 값이 더 비싼 듯한 느낌이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는지 가자고 서두른다. 나는 담배도 다 피우지 못했는데 .... 반도 못 피운 담배를 끌려고 하니 아쉬웠다. 그러나 어쩌랴 ... 서둘러 버스에 오른다.

 

<실을 뽑고 있는 여인들>

<면사를 사용하여 직조하는 여인들. 모두 수동으로 생산한다.>

<바로 옆에 판매장이 있어 직접 판매한다.>


 

16시 10분 폐와 호수에 도착한다. 보트를 타려고 배에 오르려는데 낮 익은 한글로 된 현수막이 건너편에 보인다. 대한항공 전세기가 카트만두에 취항한다는 환영 현수막이었다. 반가웠다. 이런 곳에서도 우리글을 볼 수 있다니 ... 우리나라의 위상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대한항공 전세기 취항 축하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배 하나에 네 명씩 한 조가 되어 배에 오른다. 배에 오르니 모두 신이 난 듯하다. 배를 타면 모두 어린아이들처럼 좋아한다. 나도 배를 타니 좋은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리라. 서로 사진을 찍어 주며 즐겁게 주변을 둘러본다. 우리나라 충주호보다 훨씬 적은 호수지만 그 나름으로 운치가 있었다. 멀리 보이는 곳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지 연기가 굴뚝으로 피어오른다. 꽤 빠르게 식사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아마 손으로 식사를 하기 때문이리라. 이곳 사람들은 뜨거운 밥을 먹지 못한다. 밥을 식혀야만 손으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탄 배의 뱃사공은 뭐가 그리 급한지 제일 나중에 출발하고도 5분도 안 되어 제일 앞으로 나간다. 그 덕에 나머지 사람들의 배를 탄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지만 ....

 

<배에 오르는 동료들>

<모두 즐거운 표정들이다>

<조그만 섬인데 전체가 힌두 사원이다.>


 

잠시 후 조그만 섬에 도착한다. 우리나라 한강대교 밤섬의 절반 정도 밖에 안 되는 작은 섬에 사원이 있었다. 이들에게 종교는 생활의 한 부분인 듯 보인다. 이곳에서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한국 학생들이 배낭여행을 온 모양이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한 후 헤어졌다. 날이 차츰 어둑해지려 한다.

 

<섬 안의 힌두 사원>

<거북이 모양의 나무가 인상적이다.>

다시 배를 타고 육지에 오르니 17시 30분. 역시 뭍에 오르니 장사치들이 계속 따라오며 물건 사기를 애원한다. 우리들에게 별 쓸모없는 물건들을 ....

모두 집합한 후 조금 이른 저녁이라 여자 동료들이 또 조른다. 숄 파는 가게를 소개해 달라고. 가이드는 하는 수 없이 숄 파는 가게로 여자들을 데리고 간다. 그 덕분에 남자들은 18시 30분까지 자유 시간을 얻어 시장 주변을 둘러 본다. 주변 상점들도 인도와는 다르게 깨끗하다. 호텔들도 작지만 전반적으로 깨끗한 인상을 준다. 히말라야 주변이어서인지 대부분의 상점이 트레킹 여행 안내 또는 셀파들을 제공한다는 상점과 등산 장비를 파는 곳이었다. 그 중에서 허름한 우리 상점이 눈에 띄었지만 차를 파는 곳이었다. 곧 쉼터였다. 한국인들이 많이 다니다보니 이런 곳에 정착한 한국인도 눈에 띄었다.

 

<거리의 상점들은 깨끗했다.>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모두 경차가 주류를 이룬다.>

<거리의 카페>

<길거리의 큰 나무 아래에 제단이 설치되어 있다.>

<한국사랑이라는 간판이 매우 반갑다.>

이곳 택시들은 모두 경차였다. 생각보다 많은 택시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못해서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이 택시들을 이용한다고 한다.

확실히 인도보다는 훨씬 깨끗하다. 그리고 부지런한 듯한 인상을 받는다. 산악 지대라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산악 지대이면 무척 추워야 하는데 무척 따뜻하다. 차츰 더워진다.

 

<마을 지킨다는 큰 나무를 중심으로 펼쳐진 상가 마을>

 

18시 30분 오늘 일정의 대미를 장식한다. 호텔에 도착하니 19시다. 오늘은 조금 일찍 마감했다. 내일 아침 안나푸르나를 조망할 수 있는 제2전망대가 있는 사랑콧이라는 곳에 아침 일찍 출발해야 도착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을 더 넣지 않았다.

오늘은 각자 가지고 온 찬거리들을 내놓고 술을 거나하게 한 잔씩들 한다. 여기서도 고추장과 깻잎이 인기짱이다. 호텔이 넓으니 야외 산책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인도에서는 호텔 밖 출입을 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이곳은 호텔 정원이 넓어서 저녁 식사 후 운동하기도 좋았다. 식사가 끝난 후 한 시간여를 운동하고 나니 땀이 밴다. 숙소로 돌아오니 오후 11시가 다 된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잠을 청한다. 오늘 처음 속옷 차림으로 잠을 청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