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노래

민사랑·지혜 자매

하얀제비 2007. 5. 11. 10:34

민사랑·지혜 자매 "살아난 것만 해도 감사했는데…" 

   

“아빠, 아빠. 이게 무슨 꽃이에요?”

지난달 29일 서울 양재동 ‘양재 시민의 숲’. 머리를 깡총하게 묶은 여자 아이 둘이 아빠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간다. 손에는 길가에서 따온 민들레 꽃을 한 송이씩 들었다. 또래 아이들처럼 호기심 어린 눈동자로 아빠에게 질문을 해대는 쌍둥이 자매. 4년 전 척추·엉덩이 부분이 붙은 채 한몸으로 태어났던 샴쌍둥이 민사랑·지혜(4) 자매다.

생후 4개월이던 2003년 7월 싱가포르 래플스 병원에서 7시간에 걸쳐 분리수술을 받았던 쌍둥이 자매가 어느새 훌쩍 자라 만 네 살이 됐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함께 생사(生死)를 넘나들었던 아이들은 이제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놀 만큼 건강해졌다.

“한 달 전쯤 똑같은 분홍색 자전거를 한 대씩 사줬는데 너무 좋아해요. 거의 자전거와 함께 살아요.” 수술실 앞에서 아이들이 살아주기만을 기도했던 아빠 민승준(38·영어학원 근무)씨는 자전거를 타고 멀어져 가는 두 딸을 보며 말했다. “정말, 기적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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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7월 샴쌍둥이 분리수술을 받은 민사랑(오른쪽), 지혜(왼쪽) 자매가 지난 주말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 올해 만 네 살이 된 사랑, 지혜 자매는 재활 치료를 꾸준히 받으며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최순호 기자 hoish@chosun.com

  • ◆만 네 살이 된 샴쌍둥이 자매

    분리수술에 성공했을 때 아빠와 엄마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샴쌍둥이 분리수술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1990년 가슴과 배가 붙은 남자 아이들을 비롯, 사랑과 지혜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 이뤄진 샴쌍둥이 수술은 7건(14명). 이들 중 생존자는 7명뿐이었다.

    사랑·지혜 부모는 수술비 때문에 가지고 있던 PC방과 집을 모두 팔아야 했다. 하지만 아빠 민씨는 지난 4년을 회상하면서 말끝마다 “감사하다”고 했다. “분리수술을 하고 열 달이 지났을 때 아이들이 일어서서 걷는 거예요. 그때 기분이요? 그냥 울음부터 나더라고요.” 수술 이후 자매는 꾸준히 재활치료를 받아왔다. 현재 두 아이는 말하는 능력이 또래보다 1년에서 1년 반 정도 뒤지고 균형감각도 부족한 상태이다. 생후 10개월쯤 “엄마, 아빠”를 처음 말한 후에 언어능력의 발달 속도가 또래에 비해 떨어졌다. 수술 당시 뇌에 피 공급이 잠시 중단돼 생긴 후유증 때문이다. 키도 또래 아이들보다 작고, 등에도 100바늘 넘는 수술 자국이 남았지만, 그래도 엄마 장윤경(36)씨는 지금만큼 건강해진 두 딸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아이들이 이만큼이나마 정상이어서 감사합니다. 더 어렵게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미안할 뿐이에요.”

    ◆“모든 게 기적 같아요”

    요즘 사랑과 지혜는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와 보낸다. 다니던 어린이 집은 잠시 쉬고 있다. 아이들이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해서란다. 수술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매주 언어와 심리 치료를 받고 있지만, 몸 상태가 좋아진 덕에 두 달 전부터는 재활 물리치료를 잠시 쉬고 있다. 균형감각을 키우기 위해 조만간 수영이나 무용도 시작하고 어린이 집에도 다시 나갈 계획이다.

    자매의 주말은 아빠 차지다. 학원에서 일하고 있는 민씨는 주말이면 아이들과 집 근처 공원에 간다. 자전거를 타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 아이가 자라는 모습 하나하나가 기적이라고 하지만 저희는 더 각별해요. 사랑이와 지혜의 키가 자란다는 것, 몸무게가 는다는 것, 뛰어다닌다는 것 모두가 기적이에요.” 아빠는 “아이들이 방안을 엉망으로 만들어도 고맙더라”고 했다. 옆에서 아이들 옷을 챙기던 엄마도 거든다. “애들이 작년에 신었던 신발이 올해 하나도 안 맞고 올봄에 입었던 원피스가 겨울에는 티셔츠처럼 되지만 그게 너무나 행복해요. 오히려 더 빨리 자랐으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한몸이었지만 사랑이와 지혜도 커가면서 자기 개성을 찾아가고 있다. “언니 사랑이는 얌전하고 우직하고 분홍색 옷을 좋아해요. 반면 동생인 지혜는 사교적이고 싹싹해요. 고집도 좀 있고요.”

    엄마가 자기들 이야기하는 걸 들었는지 분홍색 운동복을 입은 자매가 아빠 엄마 앞으로 달려왔다. 머리 위에 양손을 올려 하트 모양을 만들더니 “사랑해요”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곰떼마리가 한딥에 있어 아빠꼼 엄마꼼 애기꼼(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아기곰)” 하며 노래도 불렀다. 쌍둥이들의 재롱에 부부의 얼굴에 미소가 퍼졌다.

    ◆부모는 샴쌍둥이 돕기 협회 만들어

    민씨 부부는 2005년 ‘샴쌍둥이협회’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으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란 데 대한 보답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해는 협회 회원들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해 샴쌍둥이인 베로니카·크리스티나 자매를 돕는 활동을 했다. 민씨가 6개월간 월급을 떼어 모은 350여 만원을 수술비로 전달했다. 올해도 인도네시아와 중국 지역 샴쌍둥이를 찾아갈 생각이다. 사랑이와 지혜는 어린이날 선물로 6000원짜리 진한 분홍색 ‘비눗방울 총’을 나란히 받았다. 무지개색 비눗방울을 보며 “까르르” 웃던 아이들이 자전거에 올라탔다. 페달을 밟자 자전거는 이내 힘차게 앞으로 나갔다. 분홍색 자전거가 봄 햇살에 반짝였다. 
                                                                                             김성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