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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인간에게 준 시계

하얀제비 2007. 6. 12. 16:34

신이 인간에게 준 시계

 

과거는 미래를 알기 위한 열쇠

 

운동선수의 경쟁력은 기초체력이 밑바탕이 되듯 과학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초과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 싶습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과 공동으로 기초과학을 알기 쉽게 소개하는 기획시리즈를 만들어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편집자 註]

▲ 근대 지질학의 창시자 제임스 허턴  ⓒ
근대적인 의미의 지질학이 태동하기 전에는 과거 지구의 환경 변화가 오늘날과는 달리 일시적이고 급격하게 일어났었다고 생각했다(天變地異說). 성경의 기록에 근거해 지구의 나이를 6천년 전후의 시 단위까지 제시한 성직자도 있었다.

그러나 영국의 자연과학자 제임스 허튼(1726-1797)은 면밀한 지질조사 과정을 통해 오늘날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자연의 변화는 과거에도 똑같이 지속적으로 일어났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것이 바로 근대 지질학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동일과정의 법칙’(Uniformitarianism)이다.

동일과정의 법칙은 지금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지진, 해일, 화산폭발, 유수에 의한 퇴적물의 운반, 풍화에 의한 암석의 침식 등은 일견 무질서하고 갑자기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아 과거에도 일어났었고 미래에도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질학이 자연과학인 이유도 사실 여기에 있는데, 지구의 변화가 전혀 무질서하게 일어난다면 굳이 과학의 잣대로 연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과거는 미래를 알기 위한 열쇠’가 되는 셈이며, 따라서 지질학, 해양학, 고고학, 인류학 등 과거를 연구하는 모든 학문에서 연대측정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의 연대를 알아내는 것일까? 간단하게 예를 들어 본다면 암석 부스러기가 쌓여 만들어진 퇴적층의 경우 물론 하부지층이 상부지층보다 오래됐을 것이다. 또 화강암을 만든 마그마가 관입한 증거를 야외에서 찾았다면 당연히 화강암이 관입당한 암석에 비해 젊을 것이다.

과거 해변이 융기해 만들어진 해안단구의 경우 상대적으로 오래된 단구가 더 높은 고도에 분포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법으로 암석 상호간의 선후관계는 알 수 있지만, 절대연대, 즉 구체적으로 언제 생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암석의 절대연대 측정을 위해서는 연구기자재를 이용한 분석이 필요하다.

암석의 절대연대 측정법은 매우 다양하지만 그 중 방사성 붕괴를 이용한 방법이 가장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 우라늄, 토륨 등의 자연 방사성 원소는 스스로 불안정하여 알파, 베타, 감마선을 방출하면서 안정한 딸핵종으로 붕괴하게 되는데 이들의 붕괴속도는 핵종별로 일정하다.

이 원리를 이용해 현재 암석의 동위원소(화학적 성질이 같은 동일한 원소이지만 질량수가 서로 다른 핵종)비를 측정함으로써 연대측정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지구의 나이가 45억5천만 년 내외로 밝혀진 것도 1956년 미국의 패터슨에 의해 운석과 해양 퇴적물의 납 동위원소 조성을 분석한 결과에 따른 것인데 납은 우라늄의 방사성 붕괴 산물이다.

암석의 동위원소비는 질량분석기라는 기자재를 이용해 측정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소수점 5째자리 정도의 변화도 측정할 수 있을 정도로 현재 분석기술이 발달해 있다.

▲ 하나의 광물입자에 복잡한 연대가 섞여있는 예(호주 ASI 사 제공)  ⓒ
대표적인 지질연대 측정법으로는 수십억 년에서 수백만 년 단위의 연대를 재는 Rb-Sr, K-Ar, U-Th-Pb, Sm-Nd법 등을 들 수 있다. 지질학적으로 제일 젊은 시간단위는 제4기(Quaternary)인데 지금부터 약 200만년 전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이 시기의 연대측정에 적용될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이 방사성탄소법이나 루미네선스법, 우라늄계열 비평형법 등이며 최근 지구기후 변화와 관련해서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연대측정 결과는 분석 자료에 의해 밝혀지지만 지질학적인 정보를 같이 종합해야 올바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다음 그림에서 보듯이 하나의 저어콘 광물입자에도 수십억 년 전의 여러 가지 사건에 따라 별개로 자란 부분이 중첩되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광물을 전체로 녹여 분석한다면 아무 의미 없는 평균연대만을 얻을 뿐이다.

다행히 최근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이러한 경우에도 마이크론 단위로 부분 부분을 정교하게 연대측정할 수 있는 거대장비인 고분해능 이차이온 질량분석기를 국내 최초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 설치하기로 결정, 한반도의 지사가 새롭게 정립될 수 있는 큰 계기를 맞았다.

연대측정 결과는 여러 학문적 논의에서 결정적인 해답을 준다. 약 2억3천만 년 전에 남중국과 북중국 대륙이 충돌해 다이아몬드와 같은 초고압 광물을 만들면서 현재 우리가 보는 하나의 중국 대륙으로 봉합됐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과 인접한 한반도도 그 당시 부딪힌 대륙충돌대의 일부인가의 여부는 매우 흥미로운 연구 주제로 수많은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에서 충돌대로 의심되는 지역에 대한 연대측정 결과는 논의의 결론을 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또 유골이나 문화재가 발굴되었다고 해도 이들이 언제 만들어져 매몰된 것인지를 모른다면 더 이상의 논의가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다. 1993년 10월에 북한에서 단군릉을 발굴했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그 주장의 근거도 바로 5011년이라는 연대측정결과이다. 여담이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 연대측정 결과를 별로 믿지 않는다.

연대측정 결과가 우리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예로는 원자력발전소나 방사성폐기물처분장과 같은 거대기반시설의 부지 안정성 평가를 들 수 있다. 결국 부지의 지질학적인 안정성은 주변에 활성단층이 있어서 향후 가까운 미래에 영향력 있는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가에 달린 것이다.

대부분의 땅에는 큰 규모든 작은 규모든 과거 지진의 기록인 단층이 존재하지만 그 단층이 언제 움직였었는지를 알아야 활성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더 든다면 향후 지구기온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에도 과거기록에 대한 연대측정 결과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지금이 과연 빙기와 빙기 사이의 간빙기인지 아니면 빙기 중 다소 온난한 시기인지에 대해 우리는 사실 잘 모른다. 이 문제를 알기 위해서는 연대측정 결과를 바탕으로 과거 기록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구온난화나 대형 지진 등 환경 재앙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과학적인 연구개발이 중요하며 신이 인간에게 동위원소라는 시계를 준 이유도 인간의 지혜와 이성에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정창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동위원소환경연구부장